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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 24주일] 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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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마태오성당 댓글 0건 조회 781회 작성일 20-09-13 21:12

    본문

    2 보좌 김준영 베드로

     

    찬미 예수님. 성큼 다가온 가을 날씨를 만끽하다 보니 어느덧 한 주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본당 설정 25주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올 한해도 100일 조금 넘게 남아있습니다. 바쁘게 살아왔지만, 마무리하려고 돌아보면 사실 무엇을 해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의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남은 시간도 천천히 마무리해갈 수 있도록 의탁하며 오늘 하루, 그리고 이번 한 주간 하느님의 은총 가득한 시간 보내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저번 주 주일에 용서에 관한 내용으로 강론을 했는데, 이번 주일도 용서에 관한 복음입니다.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여러분. 지난주 강론을 작성하기 전에 이번 주 복음을 살펴보았으면 좋았겠지만, 시간은 지났고 이제는 오늘의 복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강론을 시작하기 전,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다시금 되짚어 보는 시간이 필요한데, 여러분께서 함께 읽어주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매일 미사가 있으신 분들은 매일 미사를, 혹여나 들고 오지 않으신 분들은 핸드폰 매일 미사 어플을, 이것도 없으시다면 제가 강론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화살기도를 준비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준비되셨다면, 반복되는 주제 안에서도 하느님께서 건네주시는 새로움이 있기를 함께 청하며, 지금부터 우리를 위해 건네지는 복음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 8월 평일에 이미 한번 선포되었던 복음이고, 언젠가 한 번 즈음은 다들 들어보았을 말씀입니다. 만 탈렌트를 탕감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을 용서한다. 우리도 하느님께 받은 것들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을 용서해야겠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강론을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오늘 복음을 계속 살펴보고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큰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작은 빚을 탕감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 복음은 그 이유를 말씀 안에 숨겨놓고 있습니다. 이제 이 이유를 함께 살펴보기 위해서 복음을 다시금 읽어볼 텐데, 다 함께 읽어주실 부분은 26그러자 그 종이라는 부분과 29그의 동료는 엎드려서라는 부분입니다. 26절부터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절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은 두 군데에서 발견됩니다. 첫 번째는 한 사람은 엎드려 절했지만, 다른 사람은 엎드리기만 했다는 것. 두 번째는 한 사람은 그저 말하였지만, 나머지 사람은 간청했다는 것이 그 차이입니다. 두 번째 차이부터 살펴보자면 간절함이 다른 점입니다. 큰 빚을 진 사람은 엎드려 말했지만, 나머지 사람은 엎드려 간청했습니다. 단순한 뉘앙스의 차이라고만 생각하시겠지만, 성경 원문을 살펴보고, 첫 번째 차이마저 살펴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첫 번째 차이인 절하다.’라는 단어의 원문적 의미는 공경하다, 숭배하다, 경배하다, 그리고 제사를 바치다.’라는 의미입니다. 누군가에게 제사를 바친다. 뭔가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로 하느님께 희생 제사를 바치는 것. 지금 우리가 참여한 이 미사입니다. 분명 오늘 복음을 말씀해주시는 예수님의 진심을 알아보려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우리의 상황을 돌이켜보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오늘 복음의 의미는 하느님께 많은 것을 용서받은 우리가 왜 다른 이들을 용서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정작 오늘 복음에서 왜 용서하지 못했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오늘 복음의 의미는 하느님께 많은 것을 건네받았으니 그런 줄로 알고 그냥 용서하라는 의미일까? 예상하시겠지만, 당연히 아닙니다. 용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 ‘우리가 받은 것이 많아도 그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사실 오늘 복음의 의미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두 가지의 차이점 중, 첫 번째를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빚을 진 사람은 간청하며 애원했고, 첫 번째 사람은 큰 빚을 지고도 간절하지는 않았지만, 제사를 바쳤다는 이유로 탕감되었다는 점을 말입니다.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자면, 우리가 간청했던, 혹은 마지못해 바쳤던, 미사를 봉헌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하느님께서는 지금껏 우리의 많은 것을 탕감해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많은 것을 탕감받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그 많은 것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하느님께 무언가를 받아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미사를 봉헌하며 무언가를 탕감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어쩌면 한 번쯤은 우리가 남을 먼저 용서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지금껏 많은 사람을 용서했고, 더 많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처럼 고문 형리에게 넘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왜냐, 하느님께서 그것마저도 이미 탕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미사가 끝나고 다시금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하고, 또다시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상황을 만나게 될 겁니다. 만약 그때, 이 모든 것을 기억하며 억지로라도누군가를 용서하려고 애를 써볼 수 있다면, 복음서에서는 물론 등장하지 않았지만, 하느님께서 탕감해주신 각자의 만 탈렌트가 무엇인지 자신 스스로가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을 돌려 오늘의 복음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그 힘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건네받은 이 힘을 통해서 다시금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다면, 각자에게 만 탈렌트나 탕감해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를 드리며,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누군가를 용서하며, 방금 다 같이 5번이나 고백한 화답송의 말씀이 이제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 찬란하게 선포될 것입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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