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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부활 대축일] 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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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마태오성당 댓글 0건 조회 253회 작성일 20-04-11 10:05

    본문

    주님 부활 대축일 

    이철수 스테파노 주임신부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랑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흘러넘치기를 마음 모아 기도드립니다. 


       지난 2월 26일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된 사순절이 오늘 ‘주님 부활 대축일’로 마무리 됩니다. 지난 사순절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한국천주교회의 미사가 중지되고 각 성당이나 단체에서 계획되었던 모든 모임이 보류되거나 연기가 되었습니다. 마치 40여 일간의 시간이 달력에서 쑥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다급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무덤을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달려가 이 소식을 사도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전했고, 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만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빈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케노시스(κεγώσις: kenosis)가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케노시스(kenosis)란 ‘자기 비움’이란 뜻의 희랍어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εαυτον εκενωσεν: emptied himself)’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피 2, 6-7)라고 예수님의 ‘자기 비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럼 ‘비움’이란 무엇일까요? 그저 속이 텅 빈 공허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비움’ 그 너머에 어떤 존재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한 자매가 본당 신부님에게 자기 집에 와서 아버지의 임종 준비를 위해 병자성사를 드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신부님이 서둘러 도착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베게 두 개로 머리를 받쳐놓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침대 옆에는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그의 딸이 자기가 온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해준 것으로 알고 “오래 기다리셨지요?”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구이신지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신부님은 노인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저는 빈 의자를 보고 할아버지가 제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하자, “아, 신부님, 저 의자요. 방문을 좀 닫아 주시겠습니까?”하고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말씀을 하시려는 듯이 소리를 죽여 “사실, 저는 누구에게도 신부님을 모셔다 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저는 제 평생 기도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성당에서 배우긴 했지만 늘 잊어버리곤 했답니다. 그런데 약 4년 전 어느 날, 제 친구 중에 열심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가 나를 찾아와서는, 이보게 친구, 기도는 예수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매우 간단한 일이야. 자, 내가 가르쳐주지. 자네 앞에 빈 의자를 하나 갖다 놓고 그 의자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게. 예수님이 항상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약속을 하셨기에 이건 절대로 상상이 아니네. 그리고 자네가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식으로 그분께 말을 하게. 무슨 말이든 다 좋다네.”


       그래서 노인은 그 방법을 시도했고, 오래지 않아 그것을 매우 좋아하게 되어 매일 몇 시간씩 그분과 대화를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노인은 “저는 늘 조심합니다. 만약 제 딸이 제가 빈 의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애가 저를 정신병원에 보냈을 것이 분명합니다.”


       신부님은 노인의 말씀에 감동하여 예수님과의 대화는 계속하시라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매일 함께 말씀을 나누시던 그분과 곧 만나게 되실 것임을 말씀드리고, 임종에 필요한 병자성사를 집전해 드리고 본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틀 후, 딸이 아버지의 선종 소식을 알렸습니다. “평화롭게 돌아가셨는지요?”하고 묻자, “예. 2시쯤 아버지가 저를 부르시더니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제 손을 꼭 잡아 주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몸을 구부려 머리를 편안하게 의자 위에 놓으셨어요.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임종하셨어요. 신부님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신부님은 눈에서 왈칵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분처럼 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그 노인에게 있어서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의자는 빈 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의자는 예수님의 현존을 품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무려 7번이나 ‘무덤’이란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부활의 증표를 ‘빈 무덤’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아마도 우리 역시 빈 무덤의 의미와 영성을 배우라는 예수님의 뜻이 담긴 듯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행복의 형태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바라는 ‘구현행복(具現幸福)’이고, 둘째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감사함을 갖는 ‘지족행복(知足幸福)’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우리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매우 중요한 행복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욕망을 0(제로)으로 만드는 ‘초월행복(超越幸福)’이라고 합니다. 이 ‘초월행복(超越幸福)’이 바로 ‘비움의 행복’입니다. 자신을 비움으로써 세상의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느님 나라에 더욱 가까워지는 그런 행복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오늘 복음의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향해서 힘껏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달려 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달려갔고, 또 달려왔는가를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따라 살라고 당신의 ‘빈 무덤’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꾸 마음속을 가득 채우려는 욕망을 반복해서 걷어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신 것처럼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콜로새 3, 2)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의 두 제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정말 우리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을 목표로 맹렬히 달음질쳐야 합니다.


       오늘 주님 부활 대축일 하루만이라도, 과연 우리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끄집어내야 할 것은 무엇이 있는지를 명확히 구별해 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흘러넘치기를 마음 모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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