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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 4주일] 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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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마태오성당 댓글 0건 조회 250회 작성일 20-03-21 11:26

    본문

    사순 제 4주일을 지내며…

    이철수 스테파노 주임신부


    어느 작은 중소기업에 ‘김 주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잔정이 많아서 후배들 뒤치다꺼리를 하기 일쑤였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서류함을 거의 날마다 정리하느라 퇴근 시간을 자주 넘겼습니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커다란 쟁반에 커피 여러 잔을 들고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여러분,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라고 말하며 책상에 놓아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휴직계를 냈습니다.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그렇게 회사를 떠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긴 했지만, 능력이 특출하거나 남자답지 못하고, 경쟁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회사생활을 제대로 해 나기엔 좀 무능하다는 생각에, 그를 있으나 마나 한 사람으로, 또 그가 없다고 해서 자신들의 회사생활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란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김 주임’이 남기고 간 빈자리는 너무 크게 다가왔습니다. 오후마다 마실 수 있었던 향긋한 커피 한 잔은 기대할 수조차 없었고, 책상 위에는 커피 자국이 그대로 남은 채 먼지만 쌓여갔습니다. 늘 청결하고 향기가 나던 화장실은 누구도 들어가고 싶지 않은 불결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휴지통에는 늘 휴지가 넘쳤고, 서류들은 어디에 있는지 서류철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쉽게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부서 내의 직원들의 표정은 점점 짜증스러운 모습으로 변했고, 서로에게 화를 내는 일도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동안 사무실에 가득했던 따뜻함과 평안함은 사라졌습니다. 직원들은 문득 ‘김 주임’이 끓여다 준 커피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들이 ‘김 주임’ 생각에, 아직 그대로 있는 그의 책상을 무심코 들여다보았는데, 책상 앞면에 붙어있는 작은 메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편할 때 그 누군가가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때 누군가는 편안할 것이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김 주임’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누군가가 제2의 ‘김 주임’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김 주임’을 통해서 자신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미국의 찰스 알렌(Charles L. Allen: 1913 – 2005)이란 저술가는 [God's Psychiatry: Healing for Your Troubled Heart.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하느님의 정신의학]이란 책을 저술했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의 시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신체적인 시력’입니다. 피사체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바라봄입니다. 둘째는 ‘정신적인 시력’입니다. 밝은 이성(理性)이 동원되는 시력으로서, 비판하고 추리하고 통합하는 사고능력입니다. 합리적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이해하고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이러한 ‘정신적인 시력’이 없이는 세상의 진리를 제대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 신앙인이 꼭 지녀야 할 시력, 바로 ‘영적인 시력’으로서 인간은 ‘영적인 시력’을 통해서 이 세상과 이 세상 너머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과 역사와 뜻을 올바로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태생 소경)’의 시력을 되찾아 주시는 장면을 만납니다. ‘신체적인 시력’을 회복한 사람은 점차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예언자로 인정하고, 마침내는 메시아요, 주님으로 똑똑히 볼 수 있게 됩니다. 한 마디로 오늘 눈먼 이의 눈뜸은 ‘찰스 알렌’이 말한 세 가지 각기 다른 눈뜸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일단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신체적인 시력’의 치유를 받고, 자신에게 시력을 찾아준 분이 누구이신가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자신이 알고 있었던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의 능력을 갖춘 사람일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이내 예수님에 대하여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요한 9, 17)”라고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는 ‘신체적인 시력’의 회복에 이어서 ‘정신적인 시력’까지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그가 자기의 눈을 고쳐준 분이 하느님의 예언자라고 인정했다는 그 이유로 인해 회당에서 추방을 당하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다시 만나서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요한 9, 35) 라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요한 9, 38)”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굳게 믿었고 그분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신체적인 시력’과 ‘정신적인 시력’뿐만 아니라, ‘영적인 시력’까지 회복되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게 되는 온전한 의미의 새 시력을 가진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소경을 치유해 주었다고 해서, 시력을 회복하여 멀쩡해진 사람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눈뜬장님’이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에 사로잡혀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모르고, 옹골찬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눈멂을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자주 ‘눈뜬장님’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외적인 신앙 태도는 멋지거나 열심한 것처럼 비취지만, 집에 돌아가서나 이웃과 만남 안에서는 희생이나 봉사를 멀리하고 사랑의 실천에 매우 인색합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일이나 자기 신원에 관계되는 일에는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지만 정작 이웃과 함께 공동선 성취를 위한 투신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뜬장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라는 틀마저도 넘어서서, 우리의 삶의 자리 곳곳에서 폭넓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사랑의 실천은 말의 고백이 아니라 어둡고, 힘들고, 불편한 현실을 고치기 위해 흘리는 땀방울 안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신체적인 시력’이 뛰어나고, ‘정신적인 시력’이 밝아 세상 원리에 명오[明悟]가 열려있으면 무엇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느님을 알아보는 ‘영적인 시력’이 없다면, 그분의 뜻을 찾아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또 한 사람의 바리사이요, “눈뜬장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시력’이 열린 사람은 오늘 예화의 ‘김 주임’이 그러했듯이 평범하되 이웃으로부터 꼭 옆에 함께 있어 주었으면 하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하느님의 영이 이사이의 다른 일곱 아들을 물리치고 여덟째였던 다윗을 선택하는 현장에서 나타난 것처럼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1사무. 16, 7)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신체적, 정신적인 시력을 넘어서 사람의 마음과 하느님의 심정까지도 밝게 헤아릴 줄 아는 ‘영적인 시력’의 새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순절은 우리가 변화되는, 변화되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각자의 소임 안에서 일상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본 바를 올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그런 마음 깊은 신앙인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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