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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 3주일] 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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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마태오성당 댓글 0건 조회 275회 작성일 20-03-14 12:41

    본문

    사순 제 3주일을 지내며...

     이철수 스테파노 주임신부


    교형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저는 보좌신부님들과 그리고 본당 수녀님들과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여러분 모두가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인한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 내시고 건강하시기를 지향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13번씩이나 “물”이란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사람의 몸은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에는 우리 몸의 90% 이상이 물이고, 태어나서 성인이 되어 살아갈 때는 70% 이상이, 또 노인이 되어 생을 마감할 때쯤이면 물의 구성이 60% 이하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서서히 물이 줄어들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탄생과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밥을 먹지 않고는 일주일 이상 살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사흘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이렇듯이 사람은 물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런 물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그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목마른 예수님과 물 긷는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의 장면을 보게 됩니다. 저의 신학교 시절 영성 신학 담당 신부님께서는 “복음서에는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만남의 장면이 나오지만, 그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바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의 장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만남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신체적인 목마름을 직접 체험하시는 순간과 인간인 사마리아 여인이 하느님을 만나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영적인 목마름이 무엇인지를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목마름과 인간의 목마름’이 만나는 이 순간이야 말로 모든 갈증이 해소되는 극적인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며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목 마르다.’(요한 19, 28)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목마름은 당신이 그렇게도 끊임없는 사랑의 물을 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께 돌아서지 않는 우리들의 메마른 마음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와 있는 사마리아 여인의 내력을 보면, 이 여인이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꾼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샘물을 길으러 나온 것은 이 여인이 발버둥 치며 다섯 번씩이나 남편을 바꾸며 새 인생을 만들려고 애써 보았으나 여전히 목마름을 떨쳐낼 수 없었음을 표현하는 듯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여인은 많은 남성으로부터 그 목마름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받아 마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를 다섯 번씩이나 바꾸었어도, 이 세상에 그녀의 목마름을 없앨 물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여인의 모습은 금세 찾아올 목마름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또 따른 모습처럼 보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는, 눈이 열려 예수님을 ‘선생님’, ‘예언자’, ‘그리스도’라 부르며 진정 목마름을 채워 주실 분임을 점점 더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은 어떤 물이었겠습니까? 바로 사랑의 물이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다름 아니라 아낌없이, 남김없이 그리고 후회 없이 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결국 우리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기 위해서는 남이 주는 물을 그저 받아 마셔 목을 축여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내 마음에 가득 품고 있는 사랑의 물을 퍼내서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동료에게 날라다 부어줄 때, 그 물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펑펑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그곳의 한 조용한 마을의 담벼락과 집 벽이 누군가의 이름으로 도배되었습니다. 지워도 지워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수십일 지속이 되는 낙서를 보며, 마을의 주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경찰과 함께 문제의 담벼락 근처에서 잠복 작전을 펼쳤습니다.

    잡힌 범인은 8~9살가량의 초등학생 남자아이였습니다. 청바지에 깔끔한 옷차림, 안경을 쓴 똘똘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평범한 꼬마였습니다. 낙서범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이장과 동네 주민들은 상기된 얼굴로 파출소로 몰려왔습니다.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니?” 꼬마는 말이 없었습니다.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자신이 서울에서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벽에 적은 이름이 엄마의 이름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왜 엄마 이름으로 낙서를 한 거니?” 그러자 “우리 엄마가 많이 아프세요.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저를 돌 볼 수 없어, 할머니 집에 와있어요. 많은 사람이 엄마의 이름을 보고 함께 불러주면 금방 낫지 않을까 해서 엄마의 이름을 썼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쓸게요.” 어느새 소년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파출소는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습니다. 동네 어른 중에 제일 연세가 높으신 할아버지가 아이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고 연실 흔들리는 소년의 어깨를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얘야, 우리가 이제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을 테니, 동네 어디든지 마음껏 네 엄마의 이름을 낙서해도 된다. 우리도 네 엄마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그 이름을 많이 불러줄게.”

    동네 사람들은 이 어린 소년과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들의 마음이 얼마나 황량할 정도로 메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의 엄마의 건강을 향한 간절한 염원을 본, 동네의 여러 어른의 마음속에 어느새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소년의 낙서는 그쳤지만, 그 낙서로 인해 동네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고여 있던 사랑의 생명수가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우리가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또는 ‘얼마나 높은 자리까지 도달했었는지’를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만 가족과 이웃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의 샘물을 퍼내어다 주었는지를, 다시 말해서 주위의 사람과 얼마나 많이 나누었고 또 얼마나 많이 베풀면서 살았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충분히 마시고도 남을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생명의 물은 바로 예수님의 충만한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생명의 물, 사랑의 물을 되도록 많이 퍼 마시고 또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혼 속에 그 생명의 물, 사랑의 물을 길어다 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혹시 그 물이 고갈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이사 55.1)라고 늘 우리를 재촉하며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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